[한스경제/이호근 대덕대 교수] 전기차 시장이 불황에 빠지고 있다. 우선 청라지구에서 크게 화재가 발생했던 벤츠 EQE 중고차 가격이, 출시 1년 만에 44% 하락한 가격에 중고차 시장에 나오고 있다. 전기차의 인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것이다. 필자 주변에서도 전기차 계약을 취소하고 하이브리드를 고민하는 사람을 제법 만날 수 있다. 문제는 화재의 원인이 된 벤츠뿐 아니라 다른 전기차까지 중고차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연식의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의 전기차 가격이 많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지난 8월 국내에서 현대차·기아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전기차를 팔았다. 인천에서 발생한 대형 전기차 화재 사고에도 판매량이 오히려 늘어난 것인데,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자동차 업계는 '8월이 아닌 9월 판매량'을 주목해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신차 효과가 걷힌 화재 이후 진짜 전기차 성적을 봐야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필자는 올 연말까지는 제법 판매가 유지될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그동안 부진했던 전기차 판매가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원인 분석이 가능하다면, 향후 전기차 판매전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가 지난 8월 국내 시장에서 판매한 전기차는 각각 4,800대, 6,102대였다. 지난 7월 대비 22.9%, 8.6% 증가했지만, 현대차는 판매량의 34.2%(1,439대)가 캐스퍼 EV였고 기아는 65.5%(4,002대)가 EV3였다. 신차 효과로 인한 일시적인 판매 증가가 아닌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다른 전기차 판매량의 변화도 살펴봐야 한다. 기아의 주력 전기차 모델인 EV6와 EV9의 판매량은 각각 559대, 92대에 불과하다. 지난 7월 대비 판매량이 각각 55.4%, 42.9% 급감했다. 현대차의 아이오닉 5도 지난달 1222대가 팔리며 전월 대비 판매량이 30.7% 감소했다. KG모빌리티의 토레스 EVX의 국내 판매량 역시 지난 7월 대비 51.5% 감소한 377대를 기록했다. 토레스 EVX는 정부 보조금 정책이 확정되지 않아 수요가 없었던 1월(27대) 이후 올해 들어 가장 적게 팔렸다.
캐스퍼 EV와 EV3는 소형차로, 정부와 지자체 보조금을 고려하면 캐스퍼 일렉트릭은 2천만원 초중반, EV3 3천만원대로 구매가 가능하다. 작년부터 이야기 나오던 반값 전기차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분위기로 해석된다. 기존 전기차 구매 고객들은 가격과 무관하게 새로운 트렌드에 편승하고 새로운 기술을 먼저 접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다른 내연기관 차량과 비교해서 경제성과 유지비 등을 따지는 고객층으로의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1충전 주행거리가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였고, 비싸고 장거리에 고급옵션 위주로 마케팅 전략을 준비했다면, 이제는 소형 위주로 가성비 즉, EV 시리즈나 ionic 시리즈를 스탠더드 혹은 그 이하 모델로 출시해야 하는 시점이다. 기존에는 롱레인지 위주로 판매했다면, 이제부터는 배터리 용량을 줄이고 주행거리가 아닌 가격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현대차의 경우에는 9월 초에 아이오닉5 368km(기존 롱레인지 485km), 아이오닉6 367km(기존 롱레인지 524km) 등 기존 롱레인지 모델 대비 항속거리는 짧고, 가격은 저렴해진 모델을 출시하면서,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구매 장벽을 낮추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올해 안에 중국 전기차의 국내 출시가 유력해지는 상황이다 보니, 중국산 저가 전기차와의 경쟁도 염두에 둬야 한다. 서비스 인프라와 품질을 이슈로 마케팅 전략을 펼쳐야만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중국산에 대한 품질 문제가 계속 도마에 오르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전기차가 1조원을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중국산 전기차 수입액이 올해 들어 1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및 전기차 화재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브랜드 전기 승용차의 국내 진출도 예고돼 있어 국내 자동차 업계의 긴장감을 커지고 있다. 18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7월 한국의 순수전기차(BEV) 수입액은 12억9천만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13.5% 증가했는데, 국가별로는 중국산 전기차 수입액이 8억4천800만달러(약 1조1천350억원)로 전체 수입액의 65.8%를 차지해 압도적 1위였다.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이어 독일(3억3천800만달러), 미국(4천400만달러), 영국(2천300만달러) 등의 순이었다. 작년까지 한국의 전기차 수입 1위국은 독일이었고, 중국은 2위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중국산 전기차 수입액은 848% 폭증하고, 독일산 수입액은 38% 감소하면서 순위가 역전됐다.
서비스 인프라 등 차별성을 내세운 마케팅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볼지 걱정된다. 올해와 내년이 한국 전기차의 성장 가능성을 점쳐볼 중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이호근 교수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