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E100 가입 435개사…국내는 삼성 등 36개 기업 참여
글로벌 기업, RE100 달성했거나 달성 직전…한국은 이행률 10% 이하 20개사
한국 재생에너지 조달비용 최대 3배 비싸…수출기업 대응력도 미흡
지구의 마지막 경고선인 1.5℃ 위기가 눈앞에 닥쳤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작년 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1.45℃ 높아졌다. 2015년 국제사회가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통해 '산업화 이전 지구 평균기온보다 1.5℃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자'는 뜻을 모은지 8년 만이다.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진행한 것이 무색할 만큼 온도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 이에 창간 9주년을 맞는 한스경제는 그간 천착해온 '1.5°C HOW' 캠페인에 맞춰 인류 생존 최후의 방어선인 1.5°C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 부문별로 국내외 동향과 쟁점, 대안 등을 종합적으로 엮어 연중기획으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한스경제=권선형 기자]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 생산이 계속 늘어나면서 전 세계 기업들의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 달성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국제사회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맞추려면 늦어도 2040년까지 전력의 탈(脫)탄소화가 이뤄져야 하고 재생에너지 전력 비중도 88%까지 확대해야 한다. IEA는 재생에너지 도입에 더 속도가 붙어 2025년에는 재생에너지가 석탄을 제치고 최대 전력생산원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풍력과 태양광은 각각 2025년과 2026년에 원자력 발전량을 앞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러한 흐름 속에 산업계에서 국제 무역질서의 새 기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 RE100이다. RE100은 기업이 204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발적 글로벌 캠페인이다. RE100 참여 기업은 매년 전 세계 사업장의 전체 전력 사용량 대비 재생에너지 사용량을 산정해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화력발전을 대체하려는 이 자발적 이니셔티브에 대기업 참여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올해 9월 기준 RE100에 가입한 글로벌 기업은 메타, 구글, 애플, 스타벅스 등 총 435개 기업이다. 국내에서는 삼성, 현대, LG 등 36개 기업이 RE100에 참여 중이다.
현재 RE100 이행률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국내 기업들 간 격차는 큰 편이다. 애플은 2016년 9월 RE100에 참여한 뒤 약 3년 만에 재생에너지 100% 목표를 달성했다. 구글은 2017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 이케아는 북유럽 지역에서 RE100을 달성하고, 이를 전 세계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발전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는 등 글로벌 기업들의 RE100 이행률은 높은 편이다. CDP 위원회 분석 결과 이행보고를 한 382개 기업 중 33개사는 RE100을 달성(2022년 기준)했고 35개사는 재생에너지 사용이 90~100% 사이인 것으로 검증됐다.
반면 국내 기업들의 RE100 이행률은 낮은 상태다. CDP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RE100에 참여한 36개사 중 2023년 4월 이후 가입해 이행보고 대상이 아닌 신한금융그룹, 카카오, LG전자, 롯데케미칼, HD현대사이트솔루션, LS일렉트릭 등 6개사, 이행보고를 하지 않은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제외한 29개사 중 20개 기업이 이행률 10% 이하를 기록했다. 미래에셋증권‧고려아연‧롯데칠성‧KT‧삼성SDS‧삼성전기‧삼성생명‧롯데웰프두(구 롯데제과) 0%, SKC‧KB금융그룹‧삼성화재‧현대위아 1%, 네이버 3%, 기아 4%, SK텔레콤‧현대모비스 5%, 현대자동차 7%, 삼성바이오로직스 8%, 삼성SDI 9%, SK 10% 등이다. 이행률 50%를 넘는 기업은 LG에너지솔루션 57%, SK아이이테크놀로지 56%, 한국수자원공사 50% 등 3개 기업으로 60%를 넘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전체 이행률은 낮은 가운데 유독 해외사업장에서의 재생에너지 사용이 두드러지게 증가했다는 부분은 눈에 띄는 점이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사업장 재생에너지 사용률은 66.3%인 반면 국내사업장은 8.7%에 그쳤다. 삼성전자의 전체 RE100 이행률은 31%지만, 국내에서는 9%, 해외사업장 이행률은 97%를 기록했다. 현대자동차는 국내에서 0%, 해외사업장에서 19%를 달성해 총 RE100 달성률은 7%를 기록했다.
저조한 국내사업장의 재생에너지 도입에는 국내 재생에너지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한국은 재생에너지원 발전비용이 상대적으로 높아 재생에너지 조달에 드는 비용이 미국과 유럽, 중국의 1.5~3배 수준이다. 한국수출입은행의 국가별 태양광 MWh(메가와트시) 발전단가 분석 결과 인도 26~47달러, 중국 31~45달러, 아랍에미리트(UAE) 33~47달러, 프랑스 38~59달러, 베트남 48~96달러, 독일 50~69달러, 미국 52~79달러, 일본 52~101달러인데 반해 한국은 78~147달러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글로벌 기업들도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발간한 '2023 RE100 연간보고서'에 따르면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전 세계 기업 164곳(2022년 기준) 가운데 66곳(40%)은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중 32개사는 재생에너지 조달 방법이 부족하다고 지적했고, 27개사는 재생에너지의 높은 비용과 제한적인 공급을 어려움으로 꼽았다.
이러는 사이 국내 수출 기업들에게는 RE100이 사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실질적인 문제로 다가왔다. 공급망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협력사인 국내 중소·중견 제조업계에도 RE100 동참을 요구하고 있어서다.
한국무역협회가 수출실적 100만달러 이상 제조기업 610개사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16.7%(103개사)는 국내외 거래업체로부터 RE100 이행을 요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거래업체로부터 RE100 이행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밝힌 16.7%(103개사) 중 41.7%는 당장 올해나 내년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압박받았다고 답했다. 이어 8.7%는 RE100 달성 시점을 2030년 이후, 1%는 2040년 이후, 1.9%는 2050년 이후를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국내 수출기업들의 RE100 대응 능력은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제조수출기업 중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는 업체는 8.7%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의 38.5%는 향후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고, 향후 이용 계획이 없다고 답한 업체는 52.8%를 차지했다.
정우식 한국재생에너지산업발전협의회 사무총장은 “국내 재생에너지 확대에 가장 중요한 열쇠는 정부의 정책”이라며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면 국내 기업들이 국내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데 어려움이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탄소국경조정제도를 시행하는 EU의 경우 본격적으로 시행하는 2026년이 되면 RE100 환경을 조성한 국가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지만, 등한시한 나라는 엄청난 탄소세 부과와 수출 계약 취소 등의 피해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특히 RE100이 국제 무역의 기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들에게 돌아가고 국가 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선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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