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0만대, 1996년 1000만대, 2013년 5000만대 돌파
튀르키예 시작으로 해외공장 늘리며 해외서만 연간 500만대 생산
1억대 달성 계기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혁신 나서
[한스경제=최창민 기자] 현대자동차가 57년 만에 1억대 생산을 달성한 데는 기술 개발, 해외 시장 선점, 안전·품질 확보 등 3박자가 주효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도전 정신이 기틀이다. 왕회장으로 불렸던 정주영 선대회장의 어록 "이봐 해봤어?"에도 이 같은 경영 철학은 드러난다. 이는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까지 이어져 세계 최단 기간 1억대 생산이라는 결실을 낳았다.
◆ 공격적 해외 시장 진출·기술 개발 이끌어
30일 업계에 따르면 정주영 선대회장은 1967년 12월 현대차를 설립했다. 정 선대회장은 "한 나라의 국토를 인체에 비유한다면 도로는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그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다"며 회사를 세웠다. 1960년대 국토 재건과 국내 도로 확충이 계기였다.
이듬해 현대차는 울산에 조립공장을 짓고 포드의 코티나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설립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자동차 회사가 공장을 짓고 조립 생산을 시작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이후 현대차는 독자 모델을 개발하기로 한다. 국내 환경에 맞는 차량을 만들기 위해 온 노력을 기울였으나 조립 생산 방식의 한계를 맞닥뜨린 탓이다. 현대차는 정주영 선대회장의 결단이 작용했다. 임직원의 집요한 노력 끝에 프로젝트에 착수한 현대차는 약 3년 만인 1975년 '포니'를 양산했다.
포니는 1976년 국내 승용차 최초로 에콰도르 등 해외에 수출됐다. 1986년에는 국내 첫 전륜구동 승용차 '포니 엑셀'이 자동차 본고장 미국에 수출됐다.
현대차는 해외 생산 거점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토대를 다졌다. 1997년 해외 공장 중 가장 오랜 역사를 보유한 튀르키예 공장 준공 이후 인도 공장(1998년), 미국 앨라배마 공장(2005년), 체코 공장(2009년), 브라질 공장 (2012년), 인도네시아 공장(2022년) 등 세계 각지에 생산 공장을 설립하며 전 세계 연간 약 500만대 수준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
오늘날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HMGMA(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 '울산 EV 전용공장', 인도 '푸네 공장' 등 글로벌 사업장에 생산 시설을 지속적으로 확충하며 100만대 생산 능력을 추가로 구축하고 있다.
누적 1억대 생산에는 끊임없는 기술 개발도 주효했다. 1983년 두 번째 독자 승용 모델 '스텔라'를 출시한 현대차는 이어 '쏘나타'(1985년), '그랜저'(1986년), '엘란트라'(1990년) 등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모델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수많은 시행 착오를 이겨낸 현대차는 1991년 국내 첫 독자 엔진인 '알파엔진' 개발에 성공했다. 1994년에는 플랫폼부터 엔진, 변속기까지 자동차 생산의 모든 요소를 순수 국내 기술로 개발한 첫 자동차 '엑센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에는 R&D의 산실인 남양연구소를 설립했다. 남양연구소는 347만㎡ 규모 부지에 기술 개발은 물론 디자인과 설계, 시험, 평가 등 기반 연구 시설을 모두 갖춘 종합 기술 연구소다. 미국, 유럽, 인도, 중국 등 세계 각지의 기술 연구소와 함께 현대차의 신차·신기술 연구와 기술력 향상을 이끌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현대차의 글로벌 누적 차량 생산량은 1986년 100만대를 넘어섰고 10년 만인 1996년 1000만대를 달성했다. 이후 기록 달성 주기는 점차 짧아져 2013년 5000만대, 2019년 8000만대, 2022년 9000만대 생산을 기록했다. 이달에는 누적 1억대 돌파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 안전·품질 타협없다…제네시스부터 N까지
현대차가 생산량 1억대 달성에 보낸 57년은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중 가장 빠른 것으로 평가받는다. 글로벌 1위 완성차 업체인 도요타도 1937년 창립 이후 60년이 걸렸다. 폭스바겐은 69년이 소요됐다.
현대차는 누적 차량 생산 1억대 달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로 오랜 시간 현대차를 신뢰하고 지지해 준 고객을 언급했다.
1999년 취임한 정몽구 명예회장은 '품질 경영'을 통해 차량의 품질이 기업의 근본적 경쟁력인 동시에 고객의 안전과 만족에 직결되는 요소라고 강조했다. 2001년 양재본사에 '품질상황실'을 설치하고 24시간 품질과 관련된 세계 각국 고객들의 불만 사항을 실시간으로 접수 처리했다. 수집된 데이터는 현장 임직원들에게 모두 공유했다.
불량을 대대적으로 줄이기 위해 글로벌 생산 공장마다 전수검사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2004년 J.D.파워 품질 조사에서 '뉴 EF쏘나타'가 글로벌 주요 브랜드의 간판 모델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은 2015년 11월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으로 결실을 맺었다. 제네시스는 정의선 당시 부회장이 초기 계획 단계부터 전 과정을 주도한 브랜드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지속하며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와 수익성을 향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네시스는 출범 7년여 만인 지난해 8월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돌파했다. 전체 판매 중 해외 시장 비중이 40%를 상회하는 등 명실상부한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로서 입지를 굳혔다.
현대차의 고성능 브랜드 N은 WRC와 TCR 월드 투어,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등 각종 모터스포츠 대회를 통해 얻은 기술을 다수 도입한 브랜드다. 운전의 재미와 고성능 감성을 추구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N 차량은 2017년 첫 모델 'i30 N' 탄생 이후 지난 8월까지 '벨로스터 N', 'i20 N', '아반떼 N' 등 모두 13만5373대가 팔렸다. 지난해 출시된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 3세 정의선 회장, 모빌리티 솔루션 본격화
현대차는 누적 생산 1억대 달성을 계기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또 한 번의 혁신에 나선다.
2020년 취임한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비롯해 자율주행, SDV 등 신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등 현대차를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현실화하고 있다. 첫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 등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적용한 현대차의 전기차 모델들은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지 영향력 있는 자동차 기관과 매체가 주관하는 권위 있는 시상식을 석권하며 높은 경쟁력을 입증했다.
현대차는 2011년 '병렬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면서 하이브리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지속적 기술 개선과 적용 차종 확대 등으로 증가하는 하이브리드 차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된 차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내년 1월부터 적용된다. 전기차 특유의 주행 상품성과 900km 이상의 주행거리를 갖춘 EREV도 오는 2027년부터 판매 예정이다.
전동화의 양대 축인 수소전기차 시장에서는 승용 수소전기차 분야 누적 판매량 1위에 빛난다. 2013년 수소전기차 'ix35 Fuel Cell'을 세계 최초로 양산했고 2018년 전용 승용 모델 '넥쏘(NEXO)'를 선보였다. 넥쏘는 상품성이 개선된 2세대 모델 출시를 앞두고 있다.
수소전기트럭·수소전기버스 등 상용 부문 수소차량 성장세도 견조하다.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은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양산한 대형 수소전기트럭으로 독일, 스위스, 이스라엘, 미국 등 11개 국에 진출했다.
이 외에도 지난해 현대차는 신개념 스마트 도심형 모빌리티 허브인 'HMGICS(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를 싱가포르에 설립했다. 이곳에서 연구와 실증한 AI, 로봇, 스마트 팩토리 등 혁신적 제조 플랫폼과 첨단 기술은 미국 조지아 'HMGMA'와 '울산 EV 전용공장' 등 향후 완공될 생산공장에 도입된다.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는 "1억대 누적 생산의 성과는 창립부터 지금까지 현대차를 선택하고 지지해준 수많은 글로벌 고객이 있었기에 달성할 수 있었다"며 "현대차는 과감한 도전과 집요한 연구를 통해 빠르게 성장해왔으며 이를 바탕으로 모빌리티 게임 체인저로서 새로운 1억대의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겠다"라고 말했다.
최창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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