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의 탄소 배출량으로 기아, 빈곤, 사망률 높아져
오염 산업 투자 비중 커...저탄소 산업 투자 시 탄소 배출량 13배 낮아졌을 것
“슈퍼리치 탄소 배출량 획기적 감소 없다면 지구 온난화 비용 계속 증가할 것”
[한스경제=신연수 기자] 세계 상위 1% 슈퍼리치의 막대한 탄소 배출이 기아와 빈곤, 사망률을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급 요트와 전용기, 오염 유발 산업에 대한 투자 등 부유층의 소비가 늘면서 지구 온도 상승을 섭씨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비용 증가를 막기 위한 대책을 각국 정부에 촉구했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은 다음 달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를 앞두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생명을 위협하는 탄소 불평등(Carbon inequality kills)' 보고서를 28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연구 결과 억만장자 50명이 전용기, 고급 요트, 오염 유발 산업에 대한 투자 등으로 배출하는 탄소량은 소득 하위 2%인 극빈층 1억5500만명이 배출하는 양보다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보고서는 억만장자들의 전용기, 요트 등 교통수단과 투자 활동 등을 모두 살펴본 첫 연구로, 이들의 막대한 탄소 배출이 얼마나 기후 붕괴를 가속하고 일반인들의 삶과 경제에 피해를 주는지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최상위 50명의 억만장자가 단 3시간 만에 배출하는 탄소량은 일반인이 평생 배출하는 것보다 더 많았다. 이들은 전용기로 연평균 184회 비행하며 하늘에서 425시간을 보내는데, 이는 일반인이 300년에 걸쳐 배출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또한 억만장자 50명 가운데 18명이 대형 요트 23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이 한 해 동안 평균 1만2465해리를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남긴 ‘탄소 발자국’은 한 해 평균 5672t으로, 일반인이 860년 동안 배출하는 탄소에 맞먹는 것으로 추산된다. 탄소 발자국은 연료 소모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유발하는 배출량까지 계산한 결과를 말한다.
일례로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는 전용기 2대로 지난 1년간 약 25일 비행하면서 미국 아마존 직원이 207년에 걸쳐 배출할 탄소를 방출했다. 또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도 전용기 2대로 같은 기간 개인이 평균 834년 동안 배출할 양의 이산화탄소를 쏟아냈다.
이 외에 월마트 소매 체인의 상속자인 월튼 가문의 요트 3대는 1년에 1만8000t(톤)의 탄소를 배출했는데, 이는 월마트 직원 1714명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
억만장자들의 탄소 발자국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오염 산업에 대한 투자’였다. 억만장자들은 CEO 또는 지분 투자자로서 세계 상위 50대 상장기업의 34%, 상위 10대 기업 7곳을 지배하고 있다.
옥스팜은 2018년 이후 2028년까지 10년 동안 세계 상위 50대 억만장자들의 투자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이 2050년까지 2500억달러(약 326조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를 유발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에콰도르나 불가리아 같은 나라의 한 해 총생산량과 맞먹는 규모다.
이번 연구에서 옥스팜은 억만장자 50명이 투자를 통해 유발한 탄소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하면 260만t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전체 투자 가운데 40%를 석유, 광업, 해운, 시멘트 등 오염 산업에 투자한 결과다.
이들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미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요 500개 기업을 망라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투자했을 때보다 환경 오염 유발이 2배나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만약 이들이 ‘저탄소’ 산업에 투자했다면, 탄소 배출량은 13배 낮아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억만장자들이 투자한 기업 중 상당수가 좋은 기후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로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글로벌 싱크탱크 인플루언스맵(Influence Map)의 데이터베이스에서 B등급을 받은 기업은 2개 업체에 불과하며, 해당 등급은 파리기후협약에 부합하는 기후 정책을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카길 및 버크셔 해서웨이 등의 기업들은 ‘기후정책에 지장을 주는 방식으로 관여함’을 의미하는 D+와 E등급을 받았다.
옥스팜은 부유층의 탄소 배출로 천문학적인 비용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 1990~2050년 세계 상위 1% 슈퍼리치가 유발하는 경제적 비용은 52조6000억달러(약 7경2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가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1990~2050년까지 총 44조달러(약 6경800조원) 규모의 경제적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들의 막대한 탄소 배출량으로 인해 1990년 이후 세계 국내총생산(GDP)은 2조9000억달러 감소했다. 이로 인한 피해는 기후 붕괴에 대한 책임이 가장 적은 국가들에 집중될 전망이다. 보고서는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들이 1990~2050년 사이에 누적 GDP의 약 2.5%를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 남아시아, 동아시아 및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가 각각 3%와 2.4%를 잃을 것으로 예상했다.
슈퍼리치의 배출량으로 인해 농작물 손실도 막대하다. 이들의 탄소 배출로 인한 농작물 손실은 1990~2023년 사이 연간 1450만 명이 먹을 수 있는 양에 해당한다. 2023~2050년 사이에는 연간 4600만 명 규모로 증가할 전망이다. 농작물 손실은 주로 저개발국가 국민들의 영양 부족이나 빈곤으로 이어진다.
사망률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수십 년간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해 왔고, 향후 더 악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폭염에 노출되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여러 연구에서 폭염으로 인한 초과 사망이 급증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옥스팜의 연구 결과에서도 낙관적인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 슈퍼리치들이 단 4년간 배출한 탄소만으로도 충격적으로 많은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만큼 지구 온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상위 1% 부유층의 소비로 인해 2015~2019년까지 배출된 탄소만으로도 2020~2120년까지 150만 건의 초과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2120년까지 연간 1만5000명 이상의 초과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며, 현재 자연재해로 매년 발생하는 사망자 수보다 높은 수치이다.
더위로 인한 전체 초과 사망자의 78%는 저소득 및 중하위 소득 국가에서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반면 선진국의 사망자 수는 덜 심각할 것으로 예측됐다. 부유한 국가와 개인은 기후변화 적응 조치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상대적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세계 상위 10% 부유층의 소비로 인한 탄소 배출 영향으로 2120년까지 무려 480만 건의 초과 사망(연간 4만7600명)이 발생할 수 있고, 상위 50대 억만장자들의 투자로 인해 2021~2025년 배출된 탄소만으로도 2026년부터 2126년까지 연간 약3만4000건의 초과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옥스팜은 부유층이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비용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며 각국 정부에 대응을 촉구했다.
옥스팜은 세계 상위 1% 부유층을 대상으로 영구적인 누진 소득세 및 부유세 도입을 제안했다. 이들의 소득에 60%의 세금을 적용하면 배출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만 세율은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높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개인 전용기, 고급 요트,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 빈번한 항공 여행 등 탄소 집약적이고 사치스러운 소비를 금하거나 징벌적 세금 부과를 제안했다. 사치품에 90% 이상의 징벌적 세율을 적용해 과도한 소비를 억제하는 동시에 추가 세수를 확보해 국가 기후 계획에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부유한 오염원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기후 금융에 대한 요구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최악의 기후 영향을 견뎌내고 있는 남반구 국가들의 경우 더욱 그렇다”며 “전 세계 백만장자와 억만장자에게 부유세를 부과하면 연간 최소 1조7000억달러(약 2300조원)를 확보할 수 있고, 오염 산업 투자에 부유세를 부과하면 1000억달러(약 138조원)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경제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스팜은 “끊임없는 착취와 소비를 통해 이미 부유한 사람들의 부를 더 축적하도록 설계된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오랫동안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훼손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상위 10% 부유층의 소득이 하위 40%보다 높지 않아야 한다”며 “국가 내 모든 인구 집단이 관여하는 참여형 방식을 통해 불평등 완화를 위한 국가 차원의 계획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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